2.48킬로그램으로 작디 작게 태어난 우리 둘째. 애기를 안고 온 간호사가 '애기 케이지가 여기 병실 중 제일 작아요~'라고 하길래 첨에는 무슨 말인가 했고, 알고 나서는 속이 엄청 상했다.

머리가 한 손바닥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고 여린 몸이었지만 신생아실에서도, 산모실에서도 가장 크게 떠나가라 빽빽~~ 울어대던 아기였다.

태어날 때부터 비롯된 '그노무 성질~(우리 친정에선 이렇게들 말한다)'은 해가 갈수록 심해지더니, 미운 세살을 넘겨 자아가 발달하고 고집이 세어진 요즘에 이르러서는 엄마 아빠의 힘으로도 제어가 안 될 정도가 되었다. 화가 나면 형아든 엄마 아빠든 마구 때리고 들고 있던 물건을 멀리멀리 던져 버린다.

첫째 아이는 겁이 많고 유독 내성적인 아이라 다른 한편으로 걱정을 했더랬다. 사회성과 자신감을 키워 줄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그런 반면 착하고 유순해서 키우는 수고로움은 덜 한 편이었다. 둘째 아이는 대개 더 순하다고들 하길래, 둘째도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도 걱정하지 않았다. 착한 첫째 따라 서로 잘 놀고 의지하며 살 것이다. 라고.

낳고 보니 둘째는 또 첫째랑 다르더라. 똘똘하고 애교가 많으며, 말이 빠르고 첫째 때는 보지 못했던 '여시' 짓을 이 아이는 잘했다. 당연히 귀여움을, 특히 남편의 사랑을 많이 독차지했는데, 그 아이가 요즘 아이를 눈 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던 아빠까지 화나게 만들고 있다. 이 조그마한 악동이.

두 아이의 양육을 주로 담당하는 것이 나이기에, 두 아이를 혼내는 것도 주로 나의 몫이다. 둘째 아이의 고집이, 분노가,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나를 힘겹게 할 때 나도 그 기분을 그대로 표출하게 되었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욱 길길히 날뛰었고, 나는 그날 남겨 둔 힘을 다 써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은 나들이를 갔다가 아이가 오후 4시경 지쳤는지 낮잠에 들었다. 아직 네살밖에 안 된 아이니 낮잠을 거의 매일 자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웬걸, 두꺼운 옷을 벗기고 편히 재울 생각에 아이 몸을 건들자 아이가 눈을 번쩍 뜨고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를 마구 때리고 온 방을 굴러다니면서 '나가~~~나가자~~~~'만 외치기 시작했다.

그냥 애를 재울 걸 왜 옷은 벗겨가지고. 아무리 달래도 그칠 줄 모르는 아이를 다시 데리고 나갈까 했다가 그만 두었다. 나도 몰라. 그러던지 말던지. 짜증나는 상황에 이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아이에게 지는 엄마가 되면 안돼라는 마음이 발동되었다.

그러기를 30분이 지났을까. 자기를 안 달래주는 엄마가 이상했을까, 아니면 지쳐서였을까. 눈물이 줄줄 흘러가지고 눈물 자국이 흥건한 아이가 뒤집어진 몸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를 어쩔꼬. 하다가 '이리와. 엄마가 안아 줄게.' 하니 또 다시 억울한 표정을 한껏 짓다가 나에게 아이가 안기었다.

'우리 둘째가 충분히 못 놀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슬펐구나. 아쉬웠구나.'

'응'

'그렇구나. 너무 속상했구나.'

'응'

꼭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 한 것은 아니었는데, 멍~한 머리로 '~구나'라는 화법을 사용했더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이라고 대답했다. '~구나'라고 아이의 마음을 읽는 화법을 시도한 것도, 아이가 내 말에 공감해서 '응'이라고 응답한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놀란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또 말했다.

'그럼 엄마아빠가 다음 번에는 둘째가 마음껏 놀 때까지 기다려 줄게.'

'응'

내 품에 안긴 조그마한 아이가 나의 말에 마음을 열어 주었다. 예쁘다가도 힘들게 해서 안 예뻐.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게 했던 우리 둘째. 나도 모르게 구사한 '~구나' 화법이 한 성질하는 둘째 아이와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해 준듯하다. 내 입에서 속삭이듯 다정하게 나오는 '~구나'라는 말. 아이의 마음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도 부드럽게 다독여 주는 듯하다.

Posted by 양군.